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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 대선 ‘親EU 중도’가 ‘親트럼프 극우’에 역전승

동아일보 홍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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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포르투갈도 선거 ‘슈퍼선데이’
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선 후보가 18일(현지 시간) 대선 결선에서 승리한 후 부쿠레슈티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친유럽연합 성향의 단 후보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를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5.05.19.[부쿠레슈티=AP/뉴시스]

니쿠쇼르 단 루마니아 대선 후보가 18일(현지 시간) 대선 결선에서 승리한 후 부쿠레슈티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친유럽연합 성향의 단 후보는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를 따돌리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2025.05.19.[부쿠레슈티=AP/뉴시스]


18일(현지 시간) 루마니아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수학자 출신의 친(親)유럽 성향 중도 후보가 민족주의 극우성향 1위 후보를 누르는 극적인 역전승이 펼쳐졌다. 같은 날 실시된 폴란드 대선 1차 투표에서도 극우성향 후보가 뒤처졌고 포르투갈 총선에서도 일단은 ‘현상 유지’가 이뤄졌다.

유럽연합(EU) 회원국 3국의 전국 단위 선거가 펼쳐진 ‘슈퍼 선데이’ 윤곽이 드러나자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유럽이 러시아에 맞서 결속의 토대를 다지며 한숨을 돌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루마니아, 예상 뒤엎은 중도 후보의 역전

이날 루마니아 대선 결선투표에서 무소속 니쿠쇼르 단 부쿠레슈티 시장은 54.1%를 얻어 승리를 확정했다. 4일 이뤄진 1차 투표에서는 그의 득표율은 21%에 불과했다. 1위였던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제1야당 결속동맹(AUR) 대표 제오르제 시미온 후보(41%)의 절반에 그쳤던 것. 앞서 지난해 11월 열린 대선에서도 극우 성향 무소속 후보가 1위를 차지했던 바 있다. 다만 해당 선거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 혐의가 불거지며 무효가 됐다.

하지만 단 후보는 결선에서는 45.9%를 얻은 시미온 후보를 8.2%포인트 차이로 누르며 최종 승기를 잡았다. 그는 당선이 확실시되자 “루마니아 국민의 공동체가 선거에서 승리했다”며 “루마니아가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루마니아 사회가 보여준 오늘의 힘을 떠올리자”고 말했다. 이번 결선투표의 투표율은 64%로, 2000년 대선 1차 투표 이후 25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단 후보는 정통 정치인이 아닌 수학 교수 출신이다. 부동산 불법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번 대선에는 반부패, 투명성 강화, 디지털 행정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강력하게 지지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안보적으로 필수”라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선거 결과가 나온 뒤 단 후보의 지지자들이 “루마니아는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반면 시미온 후보는 그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반대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유사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영국 BBC 방송은 그가 이날 출구 결과가 발표된 뒤에도 자신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해외유권자들의 투표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하며 과거 트럼프 대통령과 유사하게 ‘선거 불복’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러시아에 맞선 단일대오를 유지하려는 EU가 결속을 강화할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원집정부제 국가인 루마니아에서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총리가 행정 실권을 가지지만 외교·국방 관련 사안은 대통령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 관계자는 무즈타바 라흐만 유럽 담당상무는 “우파 포퓰리스트인 트럼프 대통령의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n Great Again)를 추종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이 드러난 선거”라고 평가했다.

선거 결과가 확정된 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단 당선자와 통화했다며 “거듭된 조작 시도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국민이 민주주의, 법치주의 그리고 EU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역사적인 승리”라며 “루마니아가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폴란드선 친EU-극우 박빙… 포르투갈선 극우당 약진

한편 의원내각제를 택한 폴란드에서도 이날 안제이 두다 대통령의 후임을 뽑는 대선이 실시됐다. 출구조사 결과 친EU 성향의 집권 여당인 시민연합(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30.8%로 간신히 1위를 차지했다. 극우 성향 법과정의당(PiS)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카롤 나브로츠키 후보(29.1%)를 불과 2%포인트도 되지 않는 근소한 차이로 누른 것.


중도성향의 시민연합은 2023년 집권 이후 EU와 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지만, 우파 민족주의 정당 PiS는 폴란드의 국익이 우선이라는 입장이었다. 보수 역사학자 출신인 나브로츠키 후보는 유럽 난민 협정을 탈퇴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적극 협력해 안보 불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영국 BBC 방송 등은 트샤스코프스키 후보가 투표 전 여론조사에서 나브로츠키 후보보다 4~6%포인트 앞섰던 만큼 예상보다 훨씬 박빙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두 후보 모두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해 다음 달 1일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됐다. 15.4%로 3위에 오른 극우 성향 자유독립연맹(KWiN)의 스와보미르 멘트젠 후보에게 갔던 표들의 향방이 결과를 가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같은 날 치러진 포르투갈 조기 총선에서는 비리 의혹으로 위기에 몰렸던 루이스 몬테네그루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PSD)이 속한 중도우파 민주동맹그룹이 32.7%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중도좌파 사회당(PS)은 23.4%를 얻었고 극우 포퓰리즘 정당 체가는 22.6%로 사회당을 바짝 뒤쫓았다. 로이터통신은 사회당의 의석이 78석에서 58석으로 줄어든 반면 체가는 여론조사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며 8석을 늘려 58석을 확보해 사회당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홍정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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