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디지털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경제·기술 전반에서 혼돈과 격변이 일상화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혼돈의 전환기, 산업정책의 나침반을 묻다’를 주제로 창간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 정부에 바란다’는 대기획 아래, 통신·방송·반도체·AI·보안·게임·유통 등 산업별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각계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계와 정책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유력 대선주자의 ICT 공약 분석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아래 산업계가 나아갈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국내 게임산업이 2년 연속 수출 역성장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할 전망이다. 일부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할 산업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평가다. 업계는 새 정부가 ‘K-게임’의 반등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 계기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23년 만의 수출 ‘마이너스’… 연속 감소는 첫 사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24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83억9400만달러(약 12조1402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6.5% 줄어든 수치다. 게임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2000년(-5.7%) 이후 23년 만이다.
문제는 단발성 감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3분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와 3분기 모두 게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역성장이라는 기록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 |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국내 게임산업이 2년 연속 수출 역성장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할 전망이다. 일부 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할 산업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평가다. 업계는 새 정부가 ‘K-게임’의 반등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 계기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23년 만의 수출 ‘마이너스’… 연속 감소는 첫 사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24 게임백서’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게임산업의 수출액은 83억9400만달러(약 12조1402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6.5% 줄어든 수치다. 게임 수출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은 2000년(-5.7%) 이후 23년 만이다.
문제는 단발성 감소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월 발표한 ‘2024년 3분기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와 3분기 모두 게임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역성장이라는 기록을 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 지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국산 게임의 글로벌 존재감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2022년 출시된 넥슨의 ‘데이브더다이버’는 인디 감성을 앞세워 전 세계 500만장 판매를 기록했고, 2023년 등장한 네오위즈의 ‘P의 거짓’도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콘솔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외에도 시프트업이 개발한 ‘스텔라 블레이드’(2024), 넥슨의 ‘퍼스트버서커: 카잔’과 크래프톤의 ‘인조이’(2025) 등이 PC·콘솔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여전한 글로벌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감소세를 보인다는 것은, 개별 게임사의 역량만으로는 시장 확장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방증이다.
특히 한국 게임산업은 내수 시장의 규모가 제한적인 탓에, 중소·중견 개발사가 자체 수익만으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새로운 장르나 플랫폼으로의 도전 역시 수익 불확실성 때문에 시도 자체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윤석열 정부의 게임 정책은 산업 진흥보다는 이용자 보호에 방점을 둔 채, 규제 중심의 방향으로 전개돼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몇 안되는 진흥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오는 6월 대선 이후 출범할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업계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 |
국내 게임산업은 중대형 규모의 개발사를 중심으로 한 시장 양극화가 심화되며, 다양성과 실험성을 갖춘 허리층 개발사 생태계가 취약한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새로운 IP나 장르적 시도 역시 일부 기업에 국한돼 있어, 특정 성공 사례가 산업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상당수 스타트업이 사라져 신규 개발사 유입과 창작 생태계의 활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프랑스 신생 게임사 샌드폴 인터랙티브의 데뷔작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와 같은 사례가 국내에서도 많이 나와야 한다”며 “기술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개발 환경만 마련된다면 한국판 33 원정대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가 가장 현실적인 지원책으로 꼽는 방안은 제작비에 대한 세액공제 도입이다. 현재 국내법상 영상 콘텐츠 기업에는 관련 혜택이 적용되고 있지만, 게임산업은 아직 제도권 논의에 본격적으로 포함되지 못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개발자 연봉 상승 등으로 제작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직접 지원보다는, 중소 개발사에 대한 민간 투자 펀드에 국가가 출자 비율을 확대하는 방식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크래프톤 창업주 장병규 의장은 앞서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에서 “한국 게임산업이 중국을 넘어서거나 따라잡기 위해서는 게임 생태계가 풍성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허리 역할을 할 중소형 게임사가 많아져야 한다”면서 “직접 지원은 비효율적이다. 중소형 게임사를 지원하는 투자 펀드를 많이 형성하고 출자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
중국과의 수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은 오랜 기간 한국 게임의 최대 수출 시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게임의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크게 줄었다. 실제로 2022년 30.1%였던 중국 수출 비중은 2023년 25.5%로 4.6%포인트 하락하며, 주요 수출국 가운데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반면 중국산 게임은 별다른 규제 없이 국내 시장에 진입해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의 대 한국 게임 수출액은 2020년 13억5960만달러(약 1조9617억원)에서 2023년 16억4971만달러(약 2조3896억원)로 약 21% 증가했다. 일방적인 수출 불균형이 고착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불균형의 핵심 원인으로는 ‘판호(허가증)’ 문제가 지목된다. 한국 게임이 중국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중국 정부로부터 일종의 허가증인 판호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지난 몇 년간 한중 관계 악화로 인해 발급이 사실상 중단된 바 있다.
지난해 일부 재개되는 흐름이 감지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중 관계에 따라 좌우되는 불안정한 구조 탓에 정부 차원의 외교적 노력과 산업 외교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온다.
업계는 중국이 사실상 판호라는 비관세 장벽을 세워 자국 게임 산업을 보호하면서, 한국 시장에서는 자유롭게 자국 게임을 유통시키는 이중적 구조도 문제 삼고 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중국 법원의 납득하기 힘든 행보로 인해 중국 게임사로부터 로열티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게인삼업에선 중국이 한국 기업의 권익을 소홀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중국 게임사는 한국에서 마음대로 게임을 판매하고 허위 광고를 게재하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보호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구조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 정부가 문화·산업 외교 전반을 동원해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은 K-콘텐츠의 핵심 수출 품목이자, 국가 전략 산업 중 하나”라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산업 근간을 위협할 수 있는 질병코드 도입은 차기 정부가 반드시 저지해야 할 과제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표준질병분류(ICD) 11판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같은 해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고, 우리나라 질병분류 체계(KCD)에 이를 반영할지를 논의해왔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화산업계와 정신의학계,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간 이견이 팽팽히 맞서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게임 과몰입이 질병으로 분류되면 게임산업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국내 콘텐츠 산업 성장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 게임특위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게임이용장애는 ‘병적 행위’와 ‘일상적 몰입’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문화적·연령적 차이도 반영하지 못한다”면서 “게임 과몰입이 마약·도박 등과 같은 중독으로 간주돼 정신건강 기록으로 남을 경우, 게임 이용자에 낙인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남윤승 OGN 대표는 1970년대 ‘정병섭 군 자살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만화산업 탄압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58개 만화 출판사의 등록이 취소됐고 지상파 방송 만화영화의 90%가 종영됐다. 게임이 중독물질로 분류될 경우 게임 창작은 물론 이와 연관된 광고 시장, 이스포츠 및 방송 시장까지 타격을 받으며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석 연세대 연구교수는 “게임은 질병의 원인이 아닌 결과다. 게임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낡은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게임 질병화는 e스포츠 유소년 시스템 붕괴와 선수 공급망 차단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e스포츠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외 게임물 심의 제도의 민간 이양 등도 업계가 차기 정부에 요구하는 핵심 과제다.
![]() |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청년층의 주요 여가활동이 게임인 만큼,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게임은 주요 후보들의 공약 경쟁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대 대선 당시 양당 후보는 게임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확률형 아이템 정보 완전 공개 ▲게임산업 전담 부처 설치 ▲이스포츠 진흥과 지역 기반 인프라 확대 ▲청소년 셧다운제 완전 폐지 ▲게임 규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 의무화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 ▲게임 노동자 처우 개선 및 장시간 노동 개선 ▲중소·인디 게임사 지원 강화 등을 공약에 담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이재명 후보와 강유정 의원을 중심으로 ‘게임산업특별위원회(게임특위)’를 출범시키며 한발 앞서 움직였다. 게임을 단순 여가가 아닌 미래 성장동력으로 규정하고, 관련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을 위한 4대 과제를 제시했다. 게임특위는 그간 여러 간담회를 통해 수집한 이용자, 산업계의 다양한 고민들을 바탕으로 대선 공약을 수립할 계획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 역시 대선 후보가 확정되는 대로, 산업 진흥과 이용자 보호를 아우르는 게임 정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창당 초기부터 디지털·콘텐츠 산업을 주요 의제로 내세운 개혁신당도 게임 정책 초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거 공약이 실질적으로 이행된 경우는 드물다. 전 정부도 규제 완화를 언급했지만 실상은 규제가 대부분이었다”며 “이용자 보호도 좋지만 산업 진흥과 관련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이용자들도 더 나은 품질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 Copyright ⓒ 디지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