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大 외국학생 등록 차단'…하루만에 '효력 중단'

하버드대 도서관의 모습. 최철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등록 차단 조치가 하루 만에 효력을 잃었다.

미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은 23일(현지시간)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ogram·SEVP) 인증 취소의 효력을 중단해 달라는 하버드대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앨리슨 버로우스 판사는 "가처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학교측에 즉각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힐 것이라는 원고측이 입장이 충분히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는 이날 오전 미 국토안보부의 SEVP 인증 취소가 위헌·위법이라며 해당 조치를 막아달라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동시에 효력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에 외국인 학생 등록을 원천적으로 막은 조치와 관련해, 대학측이 곧바로 가처분·소송을 제기하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양상이다.

앞서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정지원 중단 조치가 위법하다'며 소송을 낸 데 이어 이날 두 번째 소송을 제기해 정부와 전면전에 나선 모양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 연합뉴스

전날 미 국토안보부는 반(反)유대주의 근절 등 정부의 요구를 거부한 하버드대에 대해 "법을 준수하지 않아 SEVP 인증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는 친테러리스트 선동가들이 유대인 학생을 포함한 많은 개인들을 괴롭히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학습 환경 방해는 물론 안전하지 않은 캠퍼스 환경을 조성했다"며 "이를 선동한 이들 중 많은 수가 외국인"이라고 설명했다.

SEVP는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ICE) 산하 프로그램으로, SEVP 인증을 받은 학교는 외국인 학생에게 비자 발급용 서류 'I-20' 등을 제공하고 유학생들이 입국 후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SEVP 인증 상실에 따라 하버드대는 더 이상 외국인 학생을 등록할 수 없고 기존 외국인 학생은 학교를 옮겨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하버드대학교의 전체 학생은 약 2만4,500명이며 이 가운데 외국인 학생은 약 6,800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할 경우 이번 조치에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숫자는 더 늘어난다.

특히 대학원 프로그램은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케네디 스쿨의 경우, 학생의 59%가 외국인 학생들이다.

하버드내 외국인 학생들은 연방 재정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고, 일반적으로 교육 비용을 더 많이 지불하기 때문에 대학 수입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캠퍼스 생활과 수업 토론을 풍요롭게 하는 다양한 관점을 제공해왔다.

대학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 중국, 인도, 영국, 한국은 하버드에 가장 많은 학생을 보낸 국가들이다.

연합뉴스

하버드대는 이날 소장에서 "정부는 펜 한 자루로 하버드 학생 구성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지우려 하고 있다"며 "이 학생들은 하버드대 및 학교의 사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하버드대는 정부의 인증 취소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자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행사한 것에 대해 정부측이 명백한 보복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의 갈등은 지난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불거졌다.

처음엔 하마스의 공습을 비난하던 여론이 다수였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보복으로 맞불을 놓자 미국 대학가에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반전 시위'가 불붙었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들이 이같은 시위의 중심에 서 있었고, 이는 평소 명문대들의 진보 성향과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 등을 강하게 비판해온 트럼프 후보의 눈밖에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버드대를 지원하던 유대인 억만장자들이 기부금을 끊기 시작했고, 공화당 의원들은 하원 교육위 청문회에 하버드대 총장을 불러 학내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온건한 대응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결국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이었던 클로딘 게이는 취임 반년 만인 지난해 1월 사임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재집권한 뒤에는 하버드대 내 반유대주의와 DEI 정책 등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더 나아가 대학의 입학정책과 교수진 채용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하버드대에 요구했지만, 대학측은 '학문의 자유'를 이유로 거부했다.

특히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교칙 변경 요구 공문까지 공개하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하버드대는 정부의 공문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빨간펜으로 조목조목 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자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26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연구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 커뮤니티에는 전날 정부의 조치 이후 학생들의 우려와 불안감이 담긴 질문들이 게시판을 뒤덮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출신 하버드생은 "비자가 취소될 경우 학업은 물론 전쟁으로 인해 귀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난감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인 학생은 "미국 대학 시스템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공부하러 왔는데, 졸지에 통제할 수 없는 게임의 말같은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게시판에는 "너무 당황할 필요는 없다. 아직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글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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