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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공약 진단]⑭ “GPU는 시작일 뿐”…SW업계가 말하는 AI 공약 조건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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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과 후보들이 인공지능(AI) 정책을 핵심 의제로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규모 투자,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 구체적이고 공격적인 공약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실제 산업 현장 평가는 어떤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움직임 저변엔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이 깔려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은 AI를 국가 전략기술로 규정하고 초거대모델 개발,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 인재 양성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AI를 선점하지 못하면 국가 경쟁력도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정치권은 물론 산업계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AI가 핵심 정책 격전지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SW업계 14개 협단체는 최근 공동 정책제안서를 마련해 각 후보 캠프에 전달했다. 이후 각 정당과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에 대해 산업계는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 현실 직시한 공약 나왔지만 ‘처우개선’은 실종=SW업계는 주요 정당들이 AI와 SW를 전면에 내세운 점 자체에 대해 현실 인식의 진전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변화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업계 숙원으로 여겨졌던 인프라 확충이 공약에 포함된 점은 실행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나 학계에서 예산이 있어도 GPU, NPU 같은 인프라를 구매하기 어려웠는데, 이를 정부 차원에서 약속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행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SW단체들이 제출한 정책 제언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이 보유한 GPU는 엔비디아 H100급 기준으로 2000장에 불과하다. 메타(15만), 마이크로소프트(15만), 구글(5만) 등 빅테크 기업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에 SW단체들은 2030년까지 GPU 5만장 확보를 제안했고, 각 후보들도 이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인재 양성 공약에 대해선 아쉬움을 드러냈다. 단순히 인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처우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사업 대가로 인해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다른 업종으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격개발 허용, 근로시간 유연화, 과업 명확화, 기술자 임금 현실화 등 구체적인 개선책 없이는 단기적인 인재 양성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어렵다”며 “무엇보다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체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데이터 개방'과 '예산 투입'이 AI 생태계 열쇠=고성능 인프라만큼이나 중요한 또 다른 과제로는 고품질 데이터 활용 환경 조성이 꼽혔다. 업계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디지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AI 학습에 적극 활용하기 위한 규제 정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는 세계 주요국보다 더 뛰어난 디지털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AI 학습 파라미터로 활용하려면 각종 규제를 넘어서야 한다”며 “공공데이터, 개인정보, 저작권 등 보호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공익 목적을 위해 사회적 합의로 우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책 제안서에는 데이터 유통 생태계 고도화를 위한 ‘데이터거래기본법’ 제정, 공공·민간 통합 데이터 마켓플레이스 구축, 정제·인증 시스템 정비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대부분 후보들 공약에선 규제 샌드박스나 네거티브 규제 전환 수준에 그친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는 예산 확보다. 정부가 미래를 위해 R&D에 투자하는 것은 중장기 과제지만, 단기간에 혁신과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예산을 투입해 국내 시장을 만들고, 국가의 지향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전 초고속인터넷망, 전자정부처럼 정부가 앞장서고 민간이 선순환 구조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흩어진 부처, 분산된 권한…‘AI 컨트롤타워’ 필요=정책의 일관성을 위한 거버넌스 측면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부총리급 격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안 배경으론 “현재 SW 부문도 공공사업은 행안부, 임베디드SW는 산업부, 게임은 문체부가 주무부처로 흩어져 있다”며 “SW 부분을 한군데로 모아 AI를 통해 경제와 사회에 이바지하는 국정운영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통령실에 AI수석을 두거나 민관을 이어주는 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하는 것도 방안이다. 그는 “컨트롤타워는 하나라는 것만 유념하여 진행한다면 좋은 방안”이라며 “더 과감해진다면 목적에 맞는 예산권한 부여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정책 제안서 작성 과정에서 가장 논의가 치열했던 부분은 ‘기존 SW산업 개선점보다 AI를 강조하는 것이 타당한지’였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향후 3년 내에 AI의 주권적 기반을 확립하지 못하면, 국가 가치 전반이 외부에 종속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그 결과 정책 제안서는 AI를 중심에 둔 방향으로 정리됐다”고 밝혔다.

업계는 AI를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닌, SW산업 미래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거대한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다. SW 업계 관계자는 “AI는 SW 역사상 처음으로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기술”이라며 “AI는 SW 하위 기술이 아니라 인류사 거대한 변곡점으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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