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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KCC’ 만든 그룹 오너의 한 마디 “프로농구에서 2등은 의미 없어. 기왕 할 거면 우승을 해”

조선일보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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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시장에서 예상 깨고 허훈까지 데려와 호화에 호화를 입힌 멤버 구성
부산 KCC 유니폼을 입은 허훈(가운데)이 29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입단식 겸 기자회견에서 친형인 허웅(왼쪽), 이상민 감독과 포즈를 취한 모습. /뉴스1

부산 KCC 유니폼을 입은 허훈(가운데)이 29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열린 입단식 겸 기자회견에서 친형인 허웅(왼쪽), 이상민 감독과 포즈를 취한 모습. /뉴스1


“훈이가 왔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용인시 마북동의 부산 KCC 클럽하우스. 최형길 단장에게 보고를 하는 조진호 사무국장의 태도는 조심스러워 보였다.

‘KCC에서 훈이로 통하는 선수는 한 명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5월부터 2015년 2월까지 KCC 사령탑을 지냈던 허재 전 감독의 둘째 아들이자 어려서부터 구단을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처럼 지냈던 지냈던 허훈(30·180cm) 말이다. 함지훈(울산 현대모비스)도 FA(자유예약선수) 시장에 나와 있었긴 했지만, 40세 베테랑인 그를 ‘훈이’와 연관 지을 수는 없었다

“들어오라 그래.” 최 단장의 한 마디 후,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 차림의 선수가 웃음을 띄며 나타났다. 예상했던 얼굴은 아니었다. 원주 DB에서 뛰던 김훈(193cm)이었다.

“(이상민) 감독이 꼭 필요한 선수라고 해서 영입하는 거야. 열심히 해.” “알겠습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훈은 최 단장과 몇 마디를 나누고 돌아섰다.

“훈이 맞잖아요”라는 사무국장의 말은 ‘넌 완전히 낚였어’로 들렸다. 최 단장도 “(기자가) 여기서 노트북 펼 뻔 했다”라고 농담을 거들었다.


자연스럽게 FA 52명 중 최대어로 꼽히던 허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KT가 ‘집토끼’ 허훈을 붙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른 구단이 허훈 영입전에 뛰어들기엔 부담이 컸다. 2024-2025시즌 연봉이 7억원이었던 허훈에게 다년 계약으로 고액을 보장해 줘야 하고, 이와 별도로 KT에 보상금 14억원(직전 시즌 선수 연봉의 200%), 혹은 ‘보호선수 4명 외 보상선수1명+3억5000만원(연봉 50%)’을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상민 KCC 신임 감독은 지난 19일 코치에서 사령탑으로 승격하면서 일성으로 “FA 시장에서 중간급 선수 1~2명을 영입해 백업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KCC는 실제로 김훈에 이어 KT 출신 가드 최진광을 데려왔다.


KCC의 국내 선수 구성은 이미 리그 최고다. 허웅(가드), 최준용, 송교창(이상 포워드), 이승현(포워드·센터)을 앞세워 2023-2024시즌 챔피언전 정상에 오르는 힘을 보였다. 이들 4명의 2024-2025시즌 공식 급여 총액만 22억6000만원이었다.

거물급 선수들이 많다 보니 KCC 선수단 전체의 지난 시즌 급여 총액은 KBL(한국농구연맹)이 정한 샐러리 캡(팀 연봉 상한액) 29억원의 107.4%인 31억1500만원이었다. KCC는 샐러리캡 초과분 2억1500만원의 30%인 6450만원을 KBL에 유소년 발전기금 명목으로 냈다. 10팀 중 유일하게 일종의 사치세를 물어야 했다.

김훈이 23일 KCC와의 영입 계약에 합의하기에 앞서 최준용이 클럽하우스 왔다. 가수 지드래곤의 패션 브랜드가 주류 회사와 협업해서 만든 하이볼 캔 한 팩(6개 들이)을 선물로 가져온 그는 최 단장과 긴 대화를 나눴다.


최 단장은 “선수 몇몇이 ‘연봉을 1억원씩 깎을 테니 허훈을 잡아달라’고 하더라”라며 맹랑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준용은 연세대 1년 후배인 허훈과 절친한 사이다. 구단 내에서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허웅도 두 살 터울 친동생인 허훈과 같이 뛰고 싶어했다. 하지만 과감한 투자로 스타 선수들을 모아왔던 KCC에게도 허훈은 ‘그림의 떡’에 가까워보였다.

최 단장과 사무국장 외에 이상민 감독, 클럽하우스에서 짐을 정리하던 전창진 전 감독이 합류했다. “훈이, 웅이, 준용이가 다 공을 오래 갖고 플레이 하는 스타일이다. 셋이 같이 뛰면 공이 잘 돌겠느냐” “보상금 액수가 크다. 허훈은 결국 KT에 남지 않겠느냐” 등의 견해가 나왔다.

전창진 전 감독은 그날 오전에 최 단장과 함께 정몽진 KCC 그룹 회장을 찾았다. 3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농구단에 애정이 큰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2등은 의미가 없다. 우승을 해야 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는 최 단장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됐다. KCC는 닷새 뒤인 28일 오후, 허훈을 영입한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 5년, 연간 보수 총액은 8억원.

허훈은 KCC가 보도자료를 내기 전에 형 허웅과 골프를 했다. 허훈은 골프를 좋아하는 데다, 80타 초반의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고 알려졌다. 오후에 허훈을 만나기로 했던 문경은 신임 감독 등 KT 관계자들은 사무실에서 대기중이었다. 농구판에는 KT가 허훈과 5년 총액 60억원 가량의 파격적인 조건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그런데 허훈은 KT 측에 “KCC에 가기로 했다”며 전화 통보를 했다. 갑자기 변심한 것이다. KCC는 2년 전에도 SK에서 삼성으로 간다고 알려졌던 최준용을 전격적으로 영입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KCC는 이번에도 KT와 6번이나 만났다는 허훈의 마음을 단숨에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KT의 제시액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말이다.

KT는 곧바로 ‘플랜 B’를 가동해 또 다른 FA 거물급 가드 김선형을 잡았다. 3년간 연봉 8억원을 주는 조건이었다. 공교롭게도 허웅·허훈 형제와 김선형은 같은 에이전트를 두고 있다.

허훈은 29일 기자회견을 열어 “오직 우승하기 위해 KCC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KT에 남았으면 최대 20억원 가량의 돈을 더 벌 수 있었을텐데, 그걸 포기했을 정도로 KCC가 자신의 첫 우승을 이루기에 매력적인 팀이라는 주장이었다.

2025-2026시즌의 팀 연봉 상한액은 전 시즌보다 1억원이 늘어난 30억원이다. 허훈까지 데려온 KCC의 급여 총액은 이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사치세의 비율은 초과금의 규모에 따라 30%(샐러리캡 10% 이하), 40%(샐러리캡 10~20%), 50%(샐러리캡 20% 초과)로 나뉜다. 그럼에도 KCC는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구단 오너가 통 큰 투자를 승인함으로써 재정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덕분이다.

현장에선 KBL의 샐러리캡이 현실에 맞지 않게 너무 낮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일부 선수의 경우 공식 발표 연봉과 실제 연봉이 다르다는 루머가 끊이질 않는다. 외국인 선수의 몸값도 마찬가지다. NBA(미 프로농구)처럼 다양한 예외 규정을 둬서 샐러리 캡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는 보완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샐러리 캡을 높이더라도 이른바 ‘부자 구단’이 마냥 지갑을 열지는 못한다. 투자에 걸맞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KCC가 허훈, 허웅, 최준용, 송교창, 이승현 모두와 동행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KCC는 이 중 1명은 일단 보호 선수에서 제외해야 한다. KT가 보호선수 대신 전액 현금 보상만 원한다고 해도, KCC는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 구성을 손보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알려졌다.

KCC는 전신인 현대 시절을 포함해 총 6번 챔피언전 정상에 올랐다. 지난 시즌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가 국내 주전 선수들의 잦은 부상, 외국인 선수의 부진 등이 겹치면서 9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다시 지갑을 연 KCC가 한 차례 더 우승 트로피를 수집한다면 울산 현대모비스(전신 기아 포함 7회 우승)과 최다 우승 기록을 나눠 가질 수 있다. 2025 챔피언전 우승팀인 창원 LG 등 다른 경쟁자들이 호화멤버의 KCC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도 다음 시즌의 관전 포인트다.

[성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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