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美인재 엑소더스 기회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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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글 지워" 미국 유학생들 패닉…"다른 나라 갈까"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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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전 세계 공관에 유학생 비자 인터뷰를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유학 준비생들 사이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사진은 28일 서울시내 유학원. /사진=뉴시스 |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유학생과 연구자의 소셜미디어(SNS)를 검열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 유학생들과 유학 준비생 사이 불안감이 고조된다. 교육계는 유학생들에게 SNS 주의보를 내렸고 미국 대신 다른 나라로 눈 돌리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한 인문대(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유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예정된 비자 인터뷰가 연기될 수 있다고 알리며 "SNS 관리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서울에 있는 월드넷US 해외교육센터의 박현태 대표는 로이터에 "고객들에게 온라인에 글을 올릴 때 주의하라고 말하고 있다"며 "특히 남학생들에게는 SNS에 수류탄이나 무기 사진 같은 극단적이거나 혐오스러운 내용을 올리지 말라고 조언한다"고 전했다.
국제교육연구소(IIE)에 따르면 2023~2024학년도 미국 유학생 중 한국인 수는 4만3149명으로, 인도(33만1602명)와 중국(27만7398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미국 고등교육 과정을 밟는 사람들 중 외국인 유학생은 6%가량 차지한다. 미국 유학생과 준비생, 학부모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트럼프 정부 관련해서 SNS에 안 좋은 글을 올렸으면 내려야 한다" "이제 과거까지 다 털리는 시대다.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이들 어릴 때부터 SNS 관리까지 해줘야 한다" 등 우려 섞인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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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 국가별 비중/그래픽=윤선정 |
미 정부의 유학생 비자 인터뷰 중단은 불안을 더 키웠다. 지난 28일 미 국무부는 유학생과 연구자의 SNS 게시물 검증을 강화하기 위한 준비 차원에서 해외 공관에 비자 인터뷰 추가 일정을 일시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대학은 대부분 5월초 입학이 확정되고 9월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5~8월에 비자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몰린다. 미국 학교에 합격해 비자 인터뷰를 앞두고 있던 유학 준비생들에겐 앞날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 한국인 유학생은 로이터에 "친구들이 비자 인터뷰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미국에서 일하려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며 "지금의 미국은 과거의 미국과 많이 달라졌다"고 한탄했다. 온라인 미국 유학 카페의 한 회원은 미국의 한 로스쿨에 합격했다면서 "비자 인터뷰 신청 안 한 사람들은 빨리 날짜 잡으라고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며 "학교도 다 합격했고 이제 비자 인터뷰 신청할 차례인데 너무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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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에서 유학생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 집회 참여자가 '국제 유학생과 교수진과 함께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 /AFPBBNews=뉴스1 |
다른 나라 출신 유학생들도 미 정부의 이번 조치로 혼란에 빠졌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외국인 학생 등록 자격을 박탈시키려고 시도했던 하버드대의 학생들은 학교는 물론 미국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영국 웨일스 출신 학생 알프레드 윌리엄슨은 "뉴스가 나왔을 때 너무 충격받았다"며 "학교 친구 몇 명은 이미 비자 갱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출신 석사생 장카이치는 미국에 머물기 위한 법률을 자문하느라 귀국 항공편을 급하게 취소했다며 "친구들끼리는 상황이 악화하면 이민국 요원들이 우리를 끌고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위협적인 조치에 다른 나라로 유학지를 변경하려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캠퍼스 인문학과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은 중국인 학생 첸은 로이터에 "미국에 갈 수 없다면 영국 런던정경대(LSE)를 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밴쿠버 캠퍼스는 올해 대학원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지원이 2024년 전체 대비 2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게이지 애버릴 UBC 총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갑자기 외국인 학생들의 비자를 취소하고 소셜미디어 감시를 강화하면서 미국에서 오는 지원자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유학생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연구원들과 직장인들도 '몸조심' 모드에 들어갔다. 남아시아 출신인 로체스터대의 한 박사과정 학생은 AP통신에 "과거에 공개적으로 옹호했던 성소수자(LGBTQ+) 대의를 말하거나 정치적 시위 근처에 보이는 것조차 너무 위험하다고 느낀다"며 "비자 재입국이 허용되지 않을까 봐 여름방학에 집에 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사이먼 마긴슨 고등교육학 교수는 지난 26일 NBC에 "유학생 감소는 미국 대학들의 '인재 파이프라인'과 수입에 영향을 주고, 경쟁국에 이익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의 하버드대 등을 겨냥한 정책에 대해 "끔찍한 정책 오류"라고 비판했다. 하버드대의 유학생 비중은 약 4분의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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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왔다가 실망" 유능한 외국인 연구자, 다시 짐싼다…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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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의 글로벌 인재 경쟁력 지수(GTCI)/그래픽=윤선정 |
"한국은 국제적 가시성을 더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연구기관에서 책임급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미국으로 자리를 옮긴 한 유럽계 연구자의 제언이다. 그는 한국만큼 국가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가도, 연구에 대한 열정이 큰 연구자 집단도 드물다고 평가하면서도 R&D(연구·개발) 기획 및 평가가 대부분 한국어로 진행되는 탓에 외국인 연구자로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R&D 기획 단계부터 해외 학자의 참여를 늘리고 전 과정에 영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국제적 가시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한국의 취약한 '개방성'은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가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인재 경쟁력 지수(GTCI)'에서도 드러난다. GTCI는 각국의 인재 유입 정책과 환경적 역량을 평가한다. 한국은 2023년 처음으로 세계 25위권 안에 들었다.
전체 평가 순위는 24위로 일본과 중국보다 앞섰지만, 정작 해외 인재 및 기업 유치에 유리한 환경인지를 보는 '대외 개방성'은 전체 134개국 중 75위에 머물렀다. 인재 유치도를 평가하는 '두뇌 획득'(Brain Gain) 점수는 10년 전인 2013년보다 13점 하락한 50.79점으로 59위를 기록했다.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세계 인재 순위 2024' 보고서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의 인재 경쟁력 순위는 2년 연속 상승해 전 세계 26위였지만, 해외 인재 풀(pool) 활용도를 매기는 '매력도' 측면에서는 100점 만점에 47.86점이라는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이같은 결과는 역시 한국 연구시스템의 '낮은 해외 개방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는 지난해 11월 정책제안서인 '과학기술정책 브리프'를 통해 "정부 R&D 지원시스템을 수월성, 개방성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연구 제안 서식을 영문화하는 등 국내 R&D 시스템을 국제 규범에 맞게 재정비하는 한편 해외 학자의 과제 심사 및 평가 과정 참여도를 현행보다 크게 늘려야 한다고 봤다.
또 "두뇌 획득을 위한 국가 간 경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경쟁의 본질은 불변한다"면서 "한국이 보유하고 있어야 할 핵심 분야의 연구자 명단을 작성한 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들을 유치하고, 다시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민 기자 [email protected] 박건희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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