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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클로즈업] 1차 접수 100곳, 최종 접수 0곳…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사업 난망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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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국가적 인공지능(AI) 인프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가 최대 2.5조원 규모로 추진하는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사업’이 민간 기업의 외면 속에 지난달 30일 마감한 첫 번째 공모부터 유찰되면서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지난 3월 1차 접수격인 ‘사업참여의향서’ 제출 단계에서는 무려 100여곳이 참여의향서를 제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실제로 기업 입장에서 참여 의사를 확정짓는 ‘사업참여계획서’를 제출한 곳은 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업계에선 이번 무응찰 사태의 배경을 단순한 준비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불리한 사업 조건과 정책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지적하는 핵심 문제는 수익성, 투자 책임, 정책 지속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불확실성이다.

◆ 수익 불확실성…“공공 우선, 중장기 수요 예측 어려워”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사업은 공공·민간 출자금 4000억원으로 설립될 특수목적법인(SPC)에 의해 추진되는데, 이 SPC는 정부 지분 51%와 민간 지분 49%로 구성된다. 공공 주도 사업이 되는 만큼 대학·연구기관·스타트업 등에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산 AI반도체(NPU) 비중을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는 등 정부 정책 목표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공공 우선공급 구조가 수익성 확보를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물론 AI 인프라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있지만,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활용 계획은 아직 부족하다. 실제 참여 사업자는 사업제안서에 향후 2045년까지 AI컴퓨팅 및 부가서비스 운영 계획과 수요 발굴 방안까지 제시해야 하는데, 정작 정부는 “예산상 국회 심의 등을 거쳐야 해 수요 확약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간이 수요를 만들어내고 수익을 책임지는 구조 속에서, 정부는 GPU 1만장 제공 등 하드웨어만 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 투자 불확실성…“지분은 정부가, 손실 책임은 민간이”

SPC 구조 역시 민간의 부담을 키웠다는 해석이다. SPC는 정부가 51%의 지분으로 사실상 의사결정권을 쥐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운영과 수익 책임은 민간이 지는 구조로, 민관 협력이라기보다는 ‘민간 위탁’에 가깝다는 주장이 잇따른다.


특히 공모 요건을 보면, 사업이 종료되거나 SPC가 해산될 경우 정부는 자신이 출자한 금액에 이자까지 얹어 매수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 경우 민간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공공 지분까지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사업이 실패하면 민간이 메우라는 이야기”라며 “변동성이 큰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손실은 민간이 책임지는 구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다.

◆ 정책 불확실성…“기술·정권 변화 따라 사업 변동 가능”

정책의 지속 가능성도 기업들이 쉽게 나서지 못한 이유다. 이 사업은 SPC 설립 이후에도 국가AI위원회 등 정책 의사결정기구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종료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민간이 사전 준비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다. 정책이 바뀌거나 장관이 교체되면 기존에 힘 있게 추진되던 사업도 백지화되거나 방향성이 달라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장기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유례 없dl 빠른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AI 시장 변화를 제도가 따라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예를 들어 공모 요건에선 국산 NPU를 2030년까지 전체 인프라의 50% 수준으로 확대하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국산 NPU는 아직 성능·호환성 측면에서 시장 검증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후일에도 기술 변화가 예측하지 못할 영역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 재공고엔 단일 응찰도 가능…삼성SDS 컨소시엄 주목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모 요건 변경 없이 6월2일부터 10일 이상 기간을 두고 재공고에 들어갈 방침이다. 재공모 시에는 한 곳이라도 신청하면 유찰 없이 사업자 선정이 가능한 만큼 업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유일하게 사전 준비를 해온 삼성SDS-삼성전자-네이버-엘리스그룹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할 가능성에도 무게를 싣고 있다. 첫 번째 공모에서는 한 곳만 응찰할 시 자동으로 유찰되기 때문에 사실상 단일 유력 후보였던 이 컨소시엄이 전략적으로 재공고 입찰을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이들 역시 수익 배분과 책임 소재에 대한 내부 조율이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최종 참여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다른 클라우드 기업이나 통신사 등이 포함된 타 컨소시엄 후보들도 결국 사업 검토를 백지화했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가운데 대부분 감감무소식인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재공고를 한다 해도 사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AI 3대강국’ 기반 마련이라는 목표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AI 패권 확보라는 국가적 사업 취지에 공감하지만, 민간을 적극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요소가 필요하다”며 “기업이 믿고 뛰어들 수 있게 책임과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개선 없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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