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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겉 다르고 속 다를까

머니투데이 유효상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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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칼럼] 왜 겉 다르고 속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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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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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이 아이들의 과자를 구매할 때 영양가와 성장발육에 도움이 되는 품목을 선택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교회를 간 횟수를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예배 참석은 긍정적인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 횟수와 금액도 실제보다 높게 응답하는 경향을 보인다. TV 시청자들은 온 가족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막상 그런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이 매우 낮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시청자들 때문에 방송국은 낭패를 겪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멋지고 착하게 보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진솔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답변하거나 행동을 한다. 이른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Desirability Bias)'이다. 평판과 위신, 체면을 관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 실제 속마음과는 다르게 왜곡이나 거짓말을 하거나, 소위 '있어 보이게' 사회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일종의 이미지 관리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힐러리가 당선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당선됐다. 또한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크게 앞선다고 보도했으나 최종 결과는 근소한 표 차이로 이겼다. 이에 대해 미국 정가에서는 과격하고 돌출 언행을 일삼는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하면, 자신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것을 우려한 유권자들이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으로 속으로는 트럼프를 지지해도 겉으로는 상대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을 거란 분석이다. 이로 인해 겉으로는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내심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의미의 '샤이 트럼프'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흑인 후보였던 토머스 브래들리가 공화당의 백인 후보인 조지 듀크미지언에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섰지만, 예상과 달리 브래들리가 패배했다. 인종 편견을 숨기려고 능력 있는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백인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브래들리 효과'라고 한다.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의 결과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로 데이터 과학자이자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세스 다비도위츠는 그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원제: Everybody Lies)'에서 구글 트렌드 분석을 통해 사람들은 인종차별, 정신질환, 성생활, 아동학대, 낙태, 광고, 종교, 건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 부분을 거짓말로 왜곡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모든 사람들이 사실과 다르게 대답하고 왜곡을 습관처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익명이 보장되는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편향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인 로저 투랑조 미시간대 교수는 그의 저서 '설문조사 응답의 심리학(원제: The Psychology of Survey Response)'에서 "사람들은 습관처럼 거짓말을 한다. 그 버릇은 설문조사에서도 나온다. 설문조사는 진실을 말하게 만드는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투랑조 교수는 '선의의 거짓말'을 자주 하면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이 습관화된다고 했다.


"늘 사람들을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는가?"라는 질문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라고 대답한다. 잠을 잔 시간은 오히려 줄여서 말한다. 적은 수면시간을 근면의 상징으로 여기고, 긴 수면 시간을 게으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으면 조금 부풀리고, 높을 때는 약간 줄여서 얘기한다. 애국심, 자선행위, 투표율은 과장된다 등 수많은 연구결과가 있다. 선거 때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꼭 투표할 것'이란 응답 비율보다 실제로 투표한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낮은 이유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의미 없는 소셜미디에에 댓글이나 '좋아요'를 할 수 없이 누르는 것도 좋은 사람인 척하려는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이다.

또한 흡연이나 음주는 실제보다 적게 하는 것으로 응답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준 경험은 과장한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관련 질문에는 찬성하거나 긍정적인 태도로 답변한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도 대표적인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의 단면이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특히 사람들은 타인을 의식하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는 행동을 한다.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을까, 또한 손해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등 많은 고민을 한다.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은 설문조사나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여론조사 회사에서는 이러한 편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기법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론조사가 틀린 경우가 많다. 사람은 진짜 속마음을 여러 가지 이유로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철저히 함구하며 절대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존재하는 이유다.

한편 싱가포르 난양공과대 심리학과 페이페이 세토 교수는 '선의의 거짓말'이나 '조건부 거짓말'을 포함한 모든 거짓말이 자녀의 거짓말 습관을 키울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아동실험심리학회지(Journal of Experimental Child Psychology)'에 발표했다. '조건부 거짓말'은 '숙제 다하면 과자 사 줄게'와 같이 자녀를 훈육할 목적으로 조건을 내걸어서 하는 거짓말을 말한다. '선의의 거짓말'은 자녀의 긍정적 감정을 유도하기 위해 사실이 아님에도 하는 거짓말을 의미하며, '너무 잘했다' '제일 똑똑하다' 등이 포함된다. 충격적인 것은 아무리 악의 없는 거짓말이라도 부모가 자녀에게 거짓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녀도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확률이 높아지며, 거짓말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이란 점을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되고 거짓말을 쉽게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세토 교수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이들의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지만, 거짓말로 양육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부정직함을 조장하고 사회나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말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한비자'에 있다. 증자의 부인이 외출을 하려는 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자 "집에서 있으면 이따 돼지 잡아서 맛있는 반찬 해줄게"라고 간신히 달래고 나갔다. 집에 돌아온 증자 부인은 돼지를 잡고 있는 증자를 보고 깜짝 놀라며 "왜 돼지를 잡냐?"며 소리쳤다. 이에 증자는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 배우는 법인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가 뭘 배우겠냐며 태연히 돼지를 잡았다.

아이에게 거짓말은 나쁜 거라고 가르치지만 부모도 거짓말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끔은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지만 '자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자녀의 정직함과 사회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민'들과 한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는 사회 전체를 부정과 부패로 얼룩지게 만든다.

선거철마다 수많은 공약이 쏟아진다. 그대로만 되면 대한민국이 마치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러한 공약들이 공염불에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제발 이번만큼은 단지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이 아니길 희망한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녹녹치 않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매우 엄중한 시기다.

새로 탄생한 정부가 국민의 기대를 꺾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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