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이후 2025년 4월 말 중국의 항구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화물선은 4월 초보다 40% 줄었다. 2025년 5월9일 중국 광둥성 선전 옌톈항에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다. REUTERS |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전세계를 상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2025년 4월, 이코노미스트지는 세 차례나 미국의 경제위기에 관한 표지 기사를 실었다. 뭉크의 ‘절규’와 ‘달러’를 혼합한 표지는 공포로 가득했다. 4월10일치 표지는 트럼프의 괴기스러운 얼굴로 채워졌다. 트럼프의 정책이 과연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일 발표되는 미국의 경제 데이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이유다.
‘하드 데이터’, 즉 실제 이벤트를 반영하는 통계는 그리 나쁘지 않다. 2025년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연율로 역성장(-0.3%)을 기록했지만, 소비와 투자는 견고했다. 역성장의 이유는 무역적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관세가 오를 것에 대비해 미리 재고를 쌓아두려는 기업이 늘면서 수입량이 급증한 것이다. 4월 고용 데이터도 좋았다. 신규 고용은 예상을 뛰어넘어 17만7천 개 늘었다. 실업률도 4.2%로 양호했다. 이들 하드 데이터만 보면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미국 경제에 주는 피해는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일까? 하드 데이터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현실에 후행하는 과거의 데이터란 사실이다.
‘소프트 데이터’가 중요한 이유다. 경제 참여자의 태도, 기대, 의견, 감정을 반영하는 이들 데이터는 무시되기 십상이지만 하드 데이터가 담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담겨 있다. 소프트 데이터는 미래의 하드 데이터를 만드는 주요 동인이다. 변화가 극심한 오늘과 같은 상황에선 그 중요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소프트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소프트 데이터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준)이 매월 시행하는 설문조사다. 이 조사는 관할구역 내 제조업과 서비스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텍사스를 포함하는 해당 조사 구역은 최근 몇 년 미국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지역 기업들은 당연히 미국 내에서 가장 낙관적인 전망, 기대를 해야 하는 곳이다.
이들의 비즈니스 활동 지수를 보면 체감경기가 하드 데이터와는 달리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업·서비스업 지수 모두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상승했지만, 최근 3개월 동안 내림세로 돌아섰다. 제조업에서 더 심각하지만, 서비스업 지수 역시 하락폭이 가파르다. 가장 최근의 조사인 4월 지수는 2022년 저점을 하락 돌파한 상황이다. 설문에 참여한 한 기업의 의견이다. 인상 깊다. 경기둔화나 침체를 제일 먼저 체감하는 운송회사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해상 컨테이너 예약이 64%나 급감했다. 컨테이너가 들어오지 않으면 적재할 것도, 수출할 것도, 트럭을 계속 운행할 방법도 없다. 우리 회사는 이미 직원의 3분의 1을 해고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 경기 실사 조사가 급락하는 걸까? 공급충격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기업들은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직후 미국이 겪었던 공급충격이 이르면 5월 말, 늦어도 6월 중순이면 닥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최대 245%에 이르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로, 미국으로 향하는 중국 화물선의 운항이 급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5년 4월 말 중국의 항구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화물선은 4월 초보다 40% 줄었다고 한다. 물류 최전선에 있는 로스앤젤레스(LA) 항만청 담당자 역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물동량이 4월 말 기준 전년 동월 대비 35% 정도 감소했다고 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5월 말부터 미국 소매점 매대에 상품이 줄면서 6월 중순이면 거의 빈 매대가 속출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공급충격이 완제품에 국한되지 않는 데 있다. 미국이 수입하는 물품 중 상당수는 완제품이 아니라 중간재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약 37%가 중간재다. 중국산만 있는 게 아니다. 글로벌 전체 국가들에서 수입하는 중간재는 40%에 이른다. 한국산 반도체, 자동차부품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제조업 부흥을 위해 관세정책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기존 제조업에까지 비용 상승을 압박하는 셈이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한 2025년 4월, 이코노미스트지는 여러 차례 미국의 경제위기에 관한 표지 기사를 실었다. 4월3일치 뭉크의 ‘절규’와 ‘달러’를 혼합한 표지는 공포로 가득했고, 4월10일치 표지는 트럼프의 괴기스러운 얼굴로 채워졌다. The Economist |
미국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제조업 대부분은 중소기업에 의해 유지된다. 노동자만 해도 480만 명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완제품 생산을 위해 중간재 40%를 수입한다. 이들 기업이 단기간에 공급업체를 변경하거나 자체 생산을 할 수 있을까? 어렵다. 관세를 물고 기존 업체에서 수입하든지 수입원을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이 이런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 내에서 자체 생산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간재만이 아니다. 제조설비 대부분은 외국산 수입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충격이 큰 애플 아이폰 등 선전 효과가 높은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대폭 낮추거나 면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규모 제조회사들은 그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미국 경제의 마비
카펙스(CAPEX), 즉 자본 지출 의향을 보여주는 지수는 벌써 급감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르네상스 매크로 리서치에 따르면 기업의 카펙스 의향은 코로나19,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 현재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자본 지출을 줄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행태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는 무모한 것이다.
경제는 인체와 비슷하게 작동한다. 혈류가 막히면 죽는 것처럼 경제도 그 흐름이 막히면 멈춘다. 트럼프는 이 흐름을 강압적으로 막으려 한다. 미국 경제의 마비는 불가피하다. 최소한 중소기업들은 투자를 멈출 것이고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기존 인력마저 줄이려 할 것이다. 실물경제의 핏줄은 소매업이다. 이들 매장이 비기 시작하면 종사자 해고는 필연이다. 이들에 앞서 물류가 대폭 줄면서 관련 노동자들 해고가 시작될 것이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팬데믹 쇼크 당시를 기억해보면, 물류와 소매업 노동자들부터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똑같은 일이 5월 말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백악관은 아직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2025년 4월10일께 중국과 미국 간 무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중국에서 미국까지 화물 운송 기간을 고려할 때, 또 이를 예상한 소매업체와 기업들의 재고 비축량을 고려할 때 공급 쇼크는 5월 말부터 순차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부터 컨테이너 하역 노동자, 트럭 운전자, 창고 직원, 소매점 직원, 중소기업 직원의 해고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운송·물류 노동자 수는 900만 명, 소매점 노동자 수는 1600만 명에 이른다. 4월 고용 관련 하드 데이터가 양호하다고 해서 5월 이후 데이터도 좋을 거란 낙관은 환상에 불과하다. 팬데믹 초기인 2020년 4월, 한 달 동안 미국 노동자 중 2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률은 거의 15%까지 치솟았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지는 않겠지만 지난 몇 년 미국 경제의 호황 아래 잊혔던 실업과 해고는 다시 미국의 일상이 될 것이다.
해결책은 있는가?
급격한 전환을 원할수록 사전 준비가 치밀해야 한다. 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오로지 자신의 느낌에 의존해 즉흥적으로 관세정책을 밀어붙였다.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는 건 당연하다. 한 발씩 물러서고는 있지만, 발생한 문제가 원상 복구되는 건 아니다. 그럴 리 없겠지만 관세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 해도 무너진 공급망을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팬데믹 당시 파괴된 공급망을 회복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똑같다. 그렇다고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 정책에 대한 불신은 오랫동안 남아 공급자의 선택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즉, 미국으로의 수출이 향후 늘어나리라 기대해도 투자를 늘려 공급 확대에 쉽게 나서진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이용해 이런 부작용을 완화하려 한다. 그의 강한 관세정책의 본질은 대규모 감세다. 이는 재정 긴축을 뜻한다. 시중 유동성 감소는 불가피하다. 그가 연준을 압박해 금리를 내리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를 중시하는 연준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연준이 통화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1분기 3.6% 올랐다. 2024년 4분기 2.4%보다 크게 상승했다. 근원 PCE도 3.5% 올라 전 분기 2.6%보다 크게 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기가 별로 남지 않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움직여줄지는 미지수다.
현재 세계는 팬데믹 경제위기와 비슷한 충격을 받고 있다. 물론 그때보다 단기적 충격의 강도는 약하다. 하지만 그 지속성은 훨씬 길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 때는 모든 것이 원상회복되리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느낌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원상회복은 불가능하리라는 우려가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통은 일시적일 거라 강조한다. 정말 그럴까? 불확실성을 걷어내지 않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모든 경제주체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합리적인 선택이자 대응책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마비’다. 미국 경제의 마비 현상은 5월 말부터 시작될 것이다. 여전히 이를 피할 방법은 있지만 트럼프와 그 진영이 방향을 바꿀지는 미지수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email protected]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