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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회담은 쇼”라고 비판했던 위성락

조선일보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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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의 회담은 쇼”라고 비판했던 위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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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중앙선 가좌역-신촌역 양방향 통제…사다리차 전도 사고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63회>]

국가안보실장에 발탁된 외교부 ‘비주류’
북미국장 시절 노무현 정부 실세들 향해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 밝히라”고 요구
북핵 6자회담 개최에 연연하지 않아
“6.25 휴전은 판문점 아닌 백마고지서 판가름 ”
“외교가 국내정치에 종속돼선 안 돼”주장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에 외교관 출신의 위성락(魏聖洛)의원을 임명한 데 대해 서울의 외교가는 안도하는 분위기입니다. 같은 날 지명된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위 실장에 대해서는 “적임자가 발탁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위 실장이 윤석열 전 정부가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고 비판하면서도 늘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외시 13회 동기인데, 외교부의 한 간부는 이렇게 평합니다. “지난 6·3 대선 전까지 국회 외통위에서 조 장관과 위 실장의 질의·응답을 지켜보면, 두 사람이 장관과 야당 의원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정책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위 실장은 조 장관과는 달리 외교부에서 북미국장,주미 정무공사,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의 요직을 거쳤음에도 비주류로 분류돼왔습니다. 옳건 그르건 보기 드물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전략가의 풍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해외에서 공관장으로 근무하는 한 외교관은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외교관은 두 부류가 있다. 위성락 대사처럼 자신의 주장을 지키려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퇴직한 000 대사처럼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이들도 있다. 위 대사는 분명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다.”

20년 넘게 지켜 본 위 실장은 외교부의 중요한 세 직책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2003년 10월 6일 미군의 용산기지 반환규모와 이전비용등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미군 용산기지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5차 회의'에서 양측 대표들이 회의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2003년 10월 6일 미군의 용산기지 반환규모와 이전비용등을 논의하기 위해 서울 미군 용산기지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5차 회의'에서 양측 대표들이 회의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위성락 외교부 북미국장,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


외교부 북미국장 시절

‘외교관 위성락’ 이 외교부 안팎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입니다. 주자메이카 대사관에서 첫 해외 근무를 시작한 위 실장은 러시아를 전공, 한러 관계 초기에 기여하고 주미대사관 참사관도 지냈지만, 그때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인수위원회에 전문위원으로 파견됐는데, 노 정부의 초대 외교부 장관에 발탁된 윤영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의 추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사람은 동향에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2003년 6월, 그는 심윤조 북미국장의 후임이 됐습니다. 당시는 한반도 평화교섭본부가 생기기 전으로 북핵 문제까지 총괄하는 북미국장은 정부 부처 내 국장급 직위 중 가장 중요한 포스트였습니다. 그는 “변방에서 20년을 지냈다”며 “이렇게 일 잘하는 부하들을 데리고 일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 7개월 만에 북미국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소위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과정에서 북미국 직원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이 논란이 돼 윤영관 장관과 함께 교체됐습니다.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은 크게 볼 때 노무현 정부의 대미 외교노선을 둘러싼 논쟁이었는데, 외교부 북미국과 조약국의 갈등에서 표면화됐습니다. 방위비 분담, 용산기지 이전 등의 문제를 기존의 한미동맹 관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북미국의 입장과 주권을 강조하는 대통령이 취임한 만큼, 미국 관련 사안도 엄정한 조약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한 겁니다.


위성락 국장은 당시 부하들의 대통령 폄하 발언 보다 용산기지 이전 문제가 자신의 발목을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요 사안이 노무현 정권의 반미 운동권 세력과 연결된 조약국의 일부 외교관 등을 통해 ‘리크’돼 결과적으로 ‘저격’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 국장은 교체되기 하루 전인 2004년 1월 19일 이례적으로 외교부 2층 브리핑실에서 출입 기자들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직접 밝혔습니다. 국장급 간부가 자신의 거취와도 관련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개 대화를 한 겁니다. 전례없던 일입니다. 그는 45분간 자신의 생각을 밝히며 선언하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각자가 (미국에 대한) 자신의 스탠스를 밝혀야 한다. 주한미군이 있어도 좋고, 나가도 좋다는 측의 주장과 동맹의 강화를 전제로 한 담론과는 다르다. 그것이 섞여 있어 문제”라고 일갈했습니다.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청와대 곳곳에 포진해 있던 반미운동권 인사들을 겨냥한 겁니다.

그럼에도 위 국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능력 있는 사람은 과오가 있더라도 다시 (가르쳐) 쓰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전보 조치됐습니다. 그는 여기서 지난 4일 국가정보원장에 지명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만나 함께 일하게 됩니다.


주미대사관 정무공사 시절

외교관 위성락은 NSC에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NSC 정책조정실 정책조정관으로 일하던 그는 2004년 8월 반 년만에 주미대사관 정무공사로 부임했습니다. 짧은 시간내 NSC의 실세였던 이종석 사무차장은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기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한미 관계는 지금처럼 전환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주한미군 감축, 전략적 유연성 합의, 한국의 우라늄 핵 물질 0.2g 농축 사건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며 한승주, 홍석현, 이태식 주미 대사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2007년 9월까지 정무공사로 재직한 그는 북핵 6자회담의 진행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는 청와대와 외교부가 6자회담을 통해 당장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홍보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습니다.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중이던 저는 어느 날 주미대사관의 위성락 정무공사 방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날 몹시 화가 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온 전문인 듯한 문서를 오른 손에 들고 흔들며 “도대체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이냐”고 했습니다.

그는 “북한 핵 문제에 일부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엄중하다. 도대체 ‘북핵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맞는 말인가. 어느 순간에 관리되고 있다는 미명하에 북핵 문제는 더욱 심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의 우려대로 북한은 영변 냉각탑 폭파쑈까지 벌이며 국제 사회를 현혹시키는 전략을 쓴 후, 더 이상 6자회담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북한이 6자회담을 통해 비핵화 연기를 하면서 무대 뒤에서는 핵무장 국가를 향해 일로매진한 것이 밝혀져 한국과 미국이 외교적 참패를 당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위 실장은 2020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했습니다. “한반도와 관련된 주요 이슈가 국제적으로 다루어질 때 논의가 한국의 입장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식으로 아전인수 격인 해석을 하거나 사안을 한국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 흔하다. 6자 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 성명을 한국이 주도하여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이 비근한 사례다."

그는 주미 정무공사 시절 이같은 자신의 입장을 개진, 청와대·외교부와 마찰을 빚었습니다. 2007년 9월 그는 주미 정무공사 요직을 마치고 귀국했는데도 본부에서 아무런 보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경력 한 가운데 난데없이 ‘2007년 9월~2008년 3월 중앙대 교수 파견’이 적혀 있는 것은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009년 8월 24일 방한중인 필립 골드버그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나중에 주한미국대사)을 만나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조선일보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009년 8월 24일 방한중인 필립 골드버그 미국 국무부 대북제재 조정관(나중에 주한미국대사)을 만나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조선일보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시절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그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특별보좌관을 지냈습니다. 이어서2009년 8월 제3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로 발탁됐습니다. 그는 6자회담이 쇼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하에 회담 재개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의 무리한 주장을 받아들여 양보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과도 맞아 떨어져 2011년 10월까지 2년 7개월 관련 업무를 계속했습니다. 2003년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된 이래 최장수 수석대표로 기록됐지만, 재임 중 6자회담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2011년 7월과 9월 발리와 베이징에서 남북 비핵화 1·2차 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 2010년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남북 당국자 간의 첫 의미있는 회담을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2012년 미국과 북한간의 2월 29일 ‘윤일 합의(閏日合意·Leap day agreement)’에 기여한 것을 자신의 업적이자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당시 평화교섭본부장을 마치면서 저와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의 외교관(觀)을 이같이 술회한 바 있습니다.

“북한과의 회담은 쇼 무대일 뿐이다. 그 쇼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막전막후에서 싸우는 스트러글(투쟁)이 모든 전선에 걸쳐 있다. 이것이 결과를 좌우한다. ‘왜 회담이 안 열리느냐. 언제 합의하느냐’고 초조해하면 매우 길고 지루한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2년 가까이 진행된 6·25 전쟁의 휴전회담은 회담장 내의 협상에서 판가름난 것이 아니다. 회담장 바깥의 백마고지에서 어느 쪽이 더 고지를 장악하느냐는 치열한 싸움 끝에 결정됐다. 북한과의 회담 현장에서 남북이 뭔가를 주고받으면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상대가 회담장만 바라보는 접근법을 하지 않는다는데 유의해야 한다."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군사적 전략, 선전전, 심리전, 모든 것이 하나로 된 총체적 싸움이다. 북한이 사용하는 모택동의 게릴라 전술은 전선의 앞과 뒤가 모두 섞여 있다.”

“국내정치가 과도하게 대외문제에 영향 미친다”

일개 국장 신분으로 노무현 정권의 운동권 핵심 세력을 향해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공개 발언하고, 외교부 주류가 이끌던 북핵 6자회담을 ‘쇼 무대’라고 비판한 위성락 실장.

그는 자신의 소신을 담은 책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에서 한국 외교의 5가지 수렁을 지적했습니다. (1)자기중심적 감정적 관점(2)국내정치에 종속된 외교(3)이념성과 당파성(4)포퓰리즘(5)아마추어리즘이라는 5대 수렁이 한국 외교 생태계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그는 외교가 국내정치의 종속변수가 되는 일이 많다며 국내 정치가 과도하게 대외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해왔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출간한 책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국내정치 종속 외교 등을 한국외교의 5대 수렁으로 지적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출간한 책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 국내정치 종속 외교 등을 한국외교의 5대 수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외교부에서 세력을 형성하지 않았지만,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들도 많습니다. 한 외교관은 “위성락 대사는 후배들에게 그렇게 인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지나 놓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를 비판하는 전현직 외교관들도 적지 않습니다.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며 정치권력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고위급 외교관은 “평론가처럼 이상적인 얘기만 할 뿐 실제로 성과를 낸 적이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저에게는 그가 이같이 말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좋았다. 밤하늘의 별만 보고 배를 저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신이 사람을 버리고, 사람이 신을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 줄을 모른다.” 동맹국의 대통령 마저 의심해야 하는 대혼돈의 시기에 그가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에게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는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한다고 얘기할 지 주목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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