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식량 구해야했던 과거 인류
뇌도 결핍에 민감하도록 진화해와
뇌도 결핍에 민감하도록 진화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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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결핍
마이클 이스터 지음|김재경 옮김|부키|436쪽|2만원
‘내일은 진짜 다이어트해야지’ 다짐하지만 매일 밤 10시 고칼로리 야식을 찾는 건 내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닐 수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네바다대학교 저널리즘학 교수인 저자는 이를 ‘욕망의 뇌가 만들어 낸 여전히 부족하다는 착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배가 부른데도 음식(특히 초가공식품)을 찾는 사람, 필요한 건 다 가졌는데도 계속 물건을 사는 사람, 심각한 위험성을 알면서도 음주나 도박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 등 허전함에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만 채워지지 않아 이를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진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저자는 신경과학·심리학·경제학 등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왜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는지 그 근본 원인을 탐구한다.
저자는 우리 뇌가 ‘지금 무언가 부족하다’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결핍 마인드셋(scarcity mindset)’으로 정의한다. 이는 ‘결핍 신호’라는 아주 작은 정보만으로도 쉽게 작동된다. “결핍 신호는 공기와도 같아 우리 곳곳에 존재하고,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다”는 게 저자 설명이다. 경기 불황이나 코로나 팬데믹처럼 모두가 대놓고 느끼는 거대한 신호도 있지만, 옆집 남자가 새로 산 벤츠 E클래스처럼 자신도 모르는 새 영향을 받는 미묘한 신호일 수도 있다. 이 ‘결핍 신호’가 작동해 ‘결핍 마인드셋’이 장착되면 우리 뇌는 ‘지금 무언가 부족하구나’라고 받아들인다. 그러면 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행동’에 본능적으로 집중한다.
여기서 이 ‘본능적으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뇌는 결핍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해 왔다. 그래야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인류는 매일 ‘식량 구하기’를 해야 했다. 이때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기회의 발견(음식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이동), 예측 불가능한 보상(열매를 찾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즉각적 반복 가능성(이런 일을 매일, 거의 하루 종일 반복)이다. 저자는 이를 ‘결핍의 고리’라고 명명한다.
문제는 실제 자원의 결핍을 겪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오히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 상태란 점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받아들이는 정보, 소유하는 물건 등 대부분이 모두 풍부해졌다. 그런데도 우리 뇌는 여전히 과거 결핍의 시대를 살았던 생존 전략을 놓지 못하고 ‘결핍의 고리’를 가동시킨다. 이 뇌의 고집과 현대사회가 빚어낸 불협화음이 과소비, 비만, 중독 같은 자기 파괴적 루틴으로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결핍의 뇌는 ‘더 많이’가 기본이며, ‘더 적게’는 거의 안중에도 없다. 우리는 더 하는 것을 당연시함으로써 종종 최적의 선택을 놓치고, 최악의 경우에는 머저리 같은 짓을 저지른다.”
저자는 이를 막기 위해선 먼저 ‘결핍의 고리’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반에 나온 ‘야식’으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뇌의 입장에선 초가공식품 같은 고칼로리의 음식을 과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대한 많이 먹어두는 건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는 이유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뇌의 상태를 인식하고, 과감히 덜 먹기를 선택해야 한다. 저자는 과달루페의 성모 수도원 등 수도사들의 삶에서 힌트를 얻는다. 철저하게 규칙적이고 절제된 삶에서 오히려 평온함을 얻더라는 것이다. 수도사만큼은 아니지만 현대인에게도 이런 생활 양식이 어느 정도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들이 하는 기도와 명상, 침묵도 도움이 된다.
현대사회의 과잉 소비와 폭식, 정보 중독 문제 등을 ‘결핍’이란 키워드로 풀어낸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한 책이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종교적으로 치우친 결론과 원론적인 대안에서 아쉬움도 남는다. 원제는 Scarcity Brain. 부제는 ‘부족함에 집착하는 마음가짐을 재설계해, ‘충분함’으로 더 잘 살아가기(Fix Your Craving Mindset and Rewire Your Habits to Thrive with Enough)’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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