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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박영선 전 장관 “진보정부, 기업ㆍ경제 살릴 수 있어⋯실용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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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박영선 전 장관 “진보정부, 기업ㆍ경제 살릴 수 있어⋯실용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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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농해수위 "송미령 장관과 양곡관리법 등 농업 민생 6법 추진 합의"
생존 위해 ‘주52시간 예외’ 허용 주장
대만, 기업ㆍ정부 한뜻으로 반도체 키워
정권 바뀌어도 정책 지속⋯국민도 지지
관료적이고 경직된 국내 대기업들 지적
“상명하달 벗어나 수평적 문화로 전환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를 관통한 메시지는 실용주의였다. ‘유연한 실용정부’ ‘실용적 시장주의’ ‘실용외교’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 이 대통령이 국정 철학을 분명히 드러냈음에도 시장은 아직 기대감과 우려를 교차하고 있다. 보수 정권은 규제를 완화하고, 진보정권은 강화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간 진보 진영이 기업의 압박 수위를 높여온 만큼, 어찌 보면 업계의 자연스러운 선입견이다. 더불어민주당 4선 국회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박영선 전 장관은 다른 입장이다. 국가 정책은 보수와 진보, 노동계와 경영계를 넘나드는 실용적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 출범에 대해 “기업의 특권을 인정해주는 ‘기업 친화적 정권’이 아닌, 기업의 미래를 위한 것들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장관은 최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 빌딩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AI 시대에 새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진보정부도 기업·경제 살릴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가 ‘규제 중심’에서 ‘진흥 중심’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공지능(AI) 기술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한 발 뒤처진 만큼, 규제보다 진흥에 초점을 맞춰 경쟁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 정책을 거론했다. 물론 그 당시 세계의 흐름이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과의 시장에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됐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진보 정권에서 한미FTA라는 성과를 거두며 성공한 정책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박 전 장관은 “이재명 정부도 반드시 해낼 것”이라며 “진정한 미래를 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여당에는 고민이 있다. 반도체 업계의 숙원인 ‘주52시간제 예외’ 이슈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노동자는 주 52시간 근무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내용의 ‘반도체 특별법’은 올해 초 국회에서 뜨겁게 논의됐으나, 민주당이 등을 돌리며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반도체 업계는 중국이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데다 미국이 높은 관세를 부과할 예정인 만큼,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중국은 최근 D램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우리나라를 쫓아오고 있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으로, 주도권을 이어 가야 하는 분야다.

박 전 장관은 “탄력적 근무를 모든 업종에 허용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특수 분야에 대해서만 이를 해소해주자는 의도”라면서도 “다만, 이를 반대하는 노조 측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법을 만들어서 노조의 반발을 사게 되면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는 현대자동차 노조의 사례를 거론했다. 박 전 장관은 “강성 노조로 분류되는 현대차는 정의선 회장이 직접 노조와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현대차 싱가포르 공장은 사람이 없는 100% 스마트 팩토리다.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노조도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1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현호 기자 hyunho@


◇대만 성공 비결…“반도체는 우리의 생명줄” 정부의 간절함

미국은 2022년 반도체지원법으로 최대 25%의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수십조 단위의 직접 투자로 자국 반도체 기업을 육성한다. 대만은 신주과학단지를 조성해 반도체 기업 TSMC는 물론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등 생태계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제 지원, 보조금 지급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안 처리를 놓고 힘겨루기만 하고 있다.

박 전 장관은 대만이 반도체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배경을 놓고 ‘대만 액션플랜’을 주목했다. 대만 정부는 2018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함께 개발해 산업을 부흥시킨다는 내용의 액션플랜을 발표했다. 핵심은 △AI 인재 육성 △대만의 AI 선도 역할 강화 △대만을 AI 혁신 허브로 육성 △법률 자유화 및 시험장 개방 △AI로 산업 혁신 등을 담고 있다.

박 전 장관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에 엔비디아의 ‘쿠다’를 인수하라는 제안을 했고, 고대역폭메모리(HBM) 협업도 요청했는데 당시 우리나라 기업은 적극적이지 못했다”며 “황 CEO는 이를 계기로 대만의 액션 플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어도 대만의 액션플랜처럼 흔들리지 않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만다린 호텔에서 글로벌 미디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만다린 호텔에서 글로벌 미디어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만의 또 다른 성공 요인으로 ‘산업 중심의 인식’을 꼽았다. 그는 “대만은 물이 부족한 나라여서 선거 때 용수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된 적이 있다”며 “공업용수와 농업용수 중 무엇을 우선할지를 두고 고민했을 때 (대만 국민들은) 공업용수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반도체는 대만 국민들에게 생존과 직결된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정치권과 국민 모두 반도체 산업 지원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대만의 반도체 기업의 사주들이 개인의 욕심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때문에 국민들이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생태계 구축, 정부가 길 터줘야”

대만은 반도체 기업 TSMC와 공급망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박 전 장관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 정책을 마련해온 경험을 갖췄다. 우리나라도 대만처럼 공급망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박 전 장관은 과거 백준호 퓨리오사 대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퓨리오사는 과거 시스템 반도체 협업 파트너를 삼성전자에서 TSMC로 옮긴 적이 있다. 반도체 설계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대만을 찾아가면 TSMC와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협력해 잘못된 설계를 금세 고친다고 한다. 생태계가 느슨한 한국과는 다른 점이다.


그는 현 산업구조를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주도하며 대기업이 선택한 거래처 위주로만 돌아가면 이는 건강한 생태계가 아니다”라고 지적하며 “큰 기업이 혼자서 다 할 수 없으니 작은 기업들이 협력하고 이것이 서로 연결돼있는 것이 생태계다. 그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소부장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우리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박 전 장관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 시켰다. ‘강소기업 100곳’을 선정, 적극적인 지원 전략을 펼쳤다. 강소기업 선발 국민심사단 모집에 약 10만 명이 모였고, 이중 100명을 선발했다. 이렇게 뽑힌 국민심사단과 전문심사단이 강소기업 신청사들을 각각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4~5억 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할 수 있었다. 박 전 장관이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 바라는 정부의 역할이다.

우리 기업의 조직 문화 변화도 주문했다. 박 전 장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조직이 관료주의적이고 위계 중심의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 대기업들은 상명하달 구조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저에게 ‘조직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삼성에 강의와 컨설팅을 나간 적이 있었는데 너무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통찰력과 새로운 시각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전 장관은 “마이크론과 인텔이 세계 곳곳에 공장을 짓고 있는데, 공장이 완성되면 우리 기업들은 지금의 포트폴리오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 “우리 기업들은 더 잘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2020년 6월 2일 서울시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게임분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0년 6월 2일 서울시 강남구 팁스타운에서 열린 게임분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불안한 국제 정세 속 경쟁력 갖추려면

미국의 관세 부과에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으면서 우리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가 불확실해지는 만큼 이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외적으로는 자국 산업 보호와 수출시장 다변화를 위한 통상 외교에 적극 나서야 하고, 내부적으로는 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한 R&D 투자, 인재 양성, 기업 규제 완화 등 산업 생태계 기반 강화에 힘써야 한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의 관세 10%는 각오해야 하는데, 그만큼의 생산성을 어디에서 찾아올 것인지는 정부의 전략과 민간 기업의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관세 부담으로 가격을 올리기보다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장관은 “우리는 중국보다 제조업이 강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발전시키는 방법이나 AI를 활용해서 생산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박 전 장관은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관적으로 기존의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는 미국 행정부의 규제로 중국 향 AI 가속기 ‘H20’ 수출이 제한되자, 미국 수출 규제를 준수하는 신형 AI 가속기인 ‘B30’ 제품을 대체품으로 준비 중이다.

[이투데이/이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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