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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란 맘다니 뉴욕주 하원의원이 25일(현지시각)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승리고 지지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
“뉴욕은 너무 비쌉니다. 조란은 비용을 낮추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민주사회주의자’인 조란 맘다니가 좌우를 막론한 기득권층의 반발을 뚫고, 올해 11월 뉴욕시장 자리를 거머쥘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맘다니는 지난 24일(현지시각) 진행된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경선에서 43.5%로 1위를 확정했다(동부 표준시 오후 5시 기준). 36.4%를 얻어 2위가 된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가 맘다니의 승리를 인정해, 맘다니는 새달 1일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뉴욕시장 후보로 결정됐다.
그의 이력은 파격의 연속이다. 그는 우간다에서 태어난 인도계 무슬림으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국 최대 사회주의자 단체인 미국민주사회주의자 소속이기도 하다. 33살이란 젊은 나이에, 2선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경력도 길지 않다. 그가 당선되면 최초의 무슬림, 사회주의자, 밀레니얼 세대 뉴욕시장이 된다.
그의 이력만큼이나 공약도 선명하다. 가장 주목받는 공약은 뉴욕시 아파트 절반에 대한 임대료 동결이다. 뉴욕시 임대료 지침 위원회가 매년 임대료 인상률을 정하는 ‘임대 안정 아파트’의 인상률을 0%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무료 시내버스 공약은 그가 주 하원의원 시절 5개 버스 노선에서 시범 운영했던 것을 확장한 것이다. 뉴욕시가 소유한 땅과 건물에 식료품점을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팔겠다는 공약도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 30달러 공약과 이민자 법률 보호 강화, 영유아 무료 보육 서비스 등도 하나같이 굵직하다.
맘다니 후보는 이런 서민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하겠다고 밝혔다. 법인세율을 11.5%로 인상하고, 뉴욕 시민 상위 1%에게 2%의 정액세를 부과하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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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가 24일 뉴욕시장 민주당 후보 경선 개표가 진행되는 중간에 연설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뉴스 |
자신의 사회주의적 비전을 한껏 담은 친서민 정책을 들고나온 젊은 이슬람 후보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반대 세력이 결집하고 있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26일 “100% 미친 공산주의자”라고 트루스소셜에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못생겼고, 목소리는 쉰 소리에, 머리도 별로 좋지 않다”며 “우리나라 역사에서 대단한 순간”이라며 외모 비하와 조롱을 담아 화려한 경선 승리 ‘축하’ 인사를 날렸다. 엘리스 스테파닉 뉴욕주 하원 의원은 “하마스 테러리스트 동조자”라고 맘다니를 비난했다.
뉴욕시에 있는 월스트리트 금융인들도 칼을 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맘다니의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월스트리트 기업주들은 그에 대항할 계획을 전화로 논의하며 2000만달러(270억원) 모금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표가 나뉘는 걸 막기 위해 현직인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쿠오모의 11월 본선 무소속 참여를 막으려 하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 후보인 커티스 슬리와에게 트럼프 행정부 자리를 알선해, 시장 선거에서 빠지게 하자는 방안도 논의됐다.
집주인들도 마찬가지다. 뉴욕시에서 가장 큰 임대 사업자 중 한 명인 스콧 레클러는 쿠오모 후보에게 25만달러를 후원했고, 맘다니 승리 후엔 애덤스 지지와 후원을 약속했다. 레클러는 뉴욕타임스에 “뉴욕의 정체성이 뭔지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뉴욕은 자본주의의 수도(the capital of capitalism)”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 임대료 동결 계획이 “주택에 대한 투자를 저해하고, 공급을 줄여 전체 임대료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맘다니의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 바로 민주당 우파다. 뉴욕타임스는 맘다니가 선출된 지 24시간이 지났지만 뉴욕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민주당 의원 셋이 공식 지지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주의 척 슈머 상원의원과 하킴 제프리스 하원의원,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그들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쿠오모를 지지했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 댄 러브 서드포인트 헤지펀드 최고경영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시장 같은 억만장자들 역시 쿠오모를 후원했다. 뉴욕이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임에도, 맘다니가 뉴욕시장 당선을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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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란 맘다니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24일 뉴욕시장 후보 민주당 경선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려 모였다. 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
하지만 맘다니 쪽도 만만치는 않다. 먼저 민주당 좌파의 지지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등은 경선 초기부터 맘다니를 지지하고 있다. 민주당 주류에서도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에 대항하기 위해선 샌더스와 코르테스 같은 진보적 포퓰리스트의 노선을 당이 끌어안아야 한다는 주문이 전부터 나오고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맘다니의 끈질긴 집중이 폭넓은 공감을 얻었고, 이는 민주당의 성공을 위한 전략지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외로 월가에서도 지지세가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요 은행을 통한 개인 기부자들이 쿠오모보다 맘다니 쪽에 더 많았고, 금융회사들의 엔지니어나 비금융직 직원들의 후원도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오모의 주요 후원자였던 마크 고튼 스트리츠블로그 대표는 이제 맘다니 후보 후원으로 돌아섰다.
가장 핵심적인 지지는 뉴욕시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이다. 특히 지난 2월 지지율 1%(에머슨칼리지 조사)였던 맘다니가 판세를 뒤집는 데는 그에게 공감한 열성적인 자원봉사자들의 호별 방문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스는 “맘다니는 민주당이 오바마 시대 이후로 지지를 잃은 젊은층과 소수민족 집단이란 전통적 지지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흥분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맘다니는 25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의 승리는 뉴욕시의 진보적이라 불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를 가로지르는 갈증이 담겨 있는 것이라 봅니다. 바로, 다른 정치에 대한 갈망,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에 대한 갈망, 뉴욕 시민의 관심사와 고충에 응답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말입니다. 어젯밤 선거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뉴욕 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달라는 대중의 명령입니다.”
민주당의 오랜 전략가인 제임스 카벨은 “이번 선거는 단순한 뉴욕시 선거가 아니라 전국적인 선거”라며 “(민주당 정치인) 모두가 그를 지지하는지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김지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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